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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빈 클라인은 랄프 로렌, 도나 카란과 함께 20세기 후반 미국 양식의 성장과 세계적 확산에 기여한 미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그는 시대정신에 미국 디자이너의 스포츠웨어를 소개했고, 누더기부터 리치한 깔끔한 파운데이션과 뉴트럴 컬러를 바탕으로 현대적이고 세련된 스타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그를 더욱 인기 있게 만든 것은 청바지, 향수, 속옷 사업에서 벌어지는 과감한 홍보 전략이었다. 나체성과 성적 표현의 금기에 도전한 캘빈 클라인의 광고는 대논쟁을 촉발하는 동시에 캘빈 클라인의 트레이드마크에 차별화된 아우라를 만들어 거대한 패션 제국을 건설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오늘날 캘빈 클라인의 의상은 미국 고전 스타일과 미니멀리스트 패션으로 조명되고 있으며 비평가들은 그를 오랜 마케팅 천재라고 생각한다.



캘빈 클라인은 1942년 11월 뉴욕 브롱스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당시 동유럽, 아일랜드, 이탈리아 등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이민자로 가득 찬 문화의 용광로였고, 아버지 역시 어린 시절 부모의 손에 의해 미국에 도착한 헝가리 이민자였다. 향후 그의 사업 파트너인 캘빈 클라인, 후에 미국 패션을 이끌게 될 배리 슈워츠, 랄프 로렌 등은 모두 성공한 미국 중산층 시민이 되고자 하는 열망과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엄격한 노동 윤리가 지배되었던 지역에서 성장했다. 어릴 적부터 스케치를 잘했던 클라인은 미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시의 FIT에 입학하여 패션에 대한 클라인의 관심사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패션에 민감한 우아한 여성이었던 어머니와 어렸을 때 바느질을 가르치던 숙련된 재봉사 할머니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전기에 정통한

1963년 FIT를 졸업한 후 캘빈 클라인은 뉴욕 제7가의 의류 제조업체 밑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당시 뉴욕의 패션은 파리 패션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이름을 붙인 몇 명의 디자이너와는 별개로, 애플 메이커들은 대개 파리 컬렉션에서 영감을 얻었다. 스케치 능력이 뛰어난 클라인은 단 밀슈타인에서 일하여 파리 오뜨 쿠튀르 컬렉션을 보고 복제하고 스케치하여 파리 패션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그는 무명 카피디자이너로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컬렉션을 만들고자 하는 욕심을 키웠다. 결국 캘빈클라인은 1968년 오랜 친구이자 사업 파트너였던 배리 슈워츠의 재정적인 도움을 받아 독자적인 회사를 설립해 패션 비즈니스 세계에 직접 뛰어들었다.


1968년 3월 캘빈 클라인은 뉴욕 7번가에 있는 요크 호텔 613호를 임대하여 작은 전시장을 열었다. 이곳은 전설적인 사건이 하루가 다르게 일어난 곳이다. 본위트 텔러 백화점의 전직 상품 담당 매니저였던 머니 오브라이언은 우연히 엘리베이터 바닥을 내려 캘빈 클라인의 궁정으로 이어졌고, 당시 패션계의 거인인 밀드레드 커스틴에게 보여주기 위한 미팅을 주선해 영화 속 이야기처럼 성공 가능성을 이끌어냈다. 캘빈 클라인의 컬렉션에 감명을 받은 밀드레드 커스틴은 즉석에서 5만 달러를 주문해 바이어들이 그의 전시장으로 몰려들도록 했다. 본위트 텔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그의 컬렉션은 쇼윈도에 전시되었고 뉴욕 타임즈에도 광고가 게재되었다. 이로써 캘빈클라인은 불과 20세의 젊은 나이에 사업기반을 구축하고 미국 패션리더로 거듭날 수 있는 힘을 갖게 됐다.

캘빈클라인은 미국의 고전적인 스포츠웨어를 젊고 현대적인 디자이너 패션으로 바꾸는 데 뛰어나다. 그의 심플하면서도 스타일리쉬한 의상은 젊은 여성의 경력 1970년대 취업 성공을 위한 페미니즘의 충격 속에서 남성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구분된다.옷은 선택사항이다. 캘빈 클라인은 1973년 코티상을 수상함으로써 미국의 대표적인 패션 디자이너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명실상부한 패션의 명성이 되었다.

캘빈 클라인의 컬렉션은 중간 색조의 중립적인 컬러 팔레트, 편안하고 편안하지만 흐트러짐이 없는 깔끔한 직선, 장식이 번성하는 신중한 미니멀리스트 스타일을 특징으로 했다. 클라인은 실크, 소프트 스웨이드, 가죽, 캐시미어, 트위드 등 유럽 프리미엄 소재를 사용해 미국 스포츠웨어의 캐주얼하고 절제된 럭셔리를 연결시켜 우아함을 더했다. 타임지는 여성복 데일리 등 주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없애면서 그의 디자인의 단순함과 순수함을 주목했고, 그 자체가 순수성, 단순성, 청결성, 현대성을 주요 특징으로 언급했다. 칼빈 클라인에게 성공의 날개를 달아준 밀드레드 커스티노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라인의 순수함과 옷 디자인에 대한 소박함이었다며 그와 처음 마주친 것을 떠올렸다. 심플함과 순수함, 절제된 우아함의 원칙은 캘빈클라인 브랜드의 미적 토대로서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캘빈클라인 브랜드는 액세서리, 디자이너 청바지, 향수 및 화장품, 속옷과 시계 등 다양한 제품 분야로 확장되었으며, 캘빈클라인 패션 제국의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남성복 컬렉션의 발달로 1978년 토탈 남성복 컬렉션 라이선스 사업 계약이 체결되고 디자이너 진 비즈니스도 출범하였다. 이 시기에 타임스스퀘어의 대형 옥외 광고판에 등장한 캘빈 클라인의 도발적인 장 광고 캠페인이 보수적인 여성 세계에 충격을 준 반면, 몸과 성에 대한 욕구를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젊은 세대의 지원 속에 캘빈 클라인의 새로운 트렌드 세팅 브랜드로서의 위상을 만들어냈다.


캘빈 클라인 진의 성공은 그에게 더 큰 모험과 성공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 주었고, 그의 트레이드마크도 속옷과 향수에 성공하여 점차 거대한 패션 제국을 형성했다. 캘빈 클라인은 1982년 여성용품 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파는 것은 이미지, 애틱이다. 다만 모든 시장에서 그 이미지가 유지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고, 새로운 시장을 겨냥한 신제품이 등장하면서 그의 이름은 점차 리사 마쉬의 비유처럼 곳곳에 존재하는 코카콜라와 같은 지위에 도달했다.

캘빈 클라인은 강력한 성적 이미지를 이용해 브랜드의 특별한 아우라를 만드는 데 탁월했다. 1979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유명한 사진작가 리차드 애버돈과 카피라이터 던 아버스에 의해 만들어진 브룩 실즈가 출연한 캘빈 클라인 진 TV 광고는 여전히 유명하다. 브룩 실즈, 15살인데 캘빈이랑 무슨 관계인지 알고 싶어? 아무것도 없다는 그의 대담한 발언이 큰 반작용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브룩 실즈는 이 광고가 곧 캘빈 클라인 진과 그녀 사이의 음란한 관계를 연상시키기 전에 1978년 개봉된 루이 말의 영화 귀여운 아기에서 사창가에서 자라나는 창녀의 딸로 등장했었다. 곧이어 여러 국방기관이 이 광고에 방송 제한을 가했고, 그의 광고는 TV 토크쇼에서 뜨거운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 악명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판매량이 급격히 증가하여 캘빈 클라인 진의 엄청난 대중적 노출과 홍보가 이루어졌고 캘빈 클라인은 계속해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소음 마케팅 기법을 유지하여 표현의 금기에 도전했다.

브룩 실즈가 출연하는 캘빈클라인 광고를 보러 가는 것- 당대 최고의 청춘 스타 중 한 명인 브룩 실즈가 출연한 섹스 어필 광고가 엄청난 홍보 효과로 매출이 급상승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선택적 향수 광고도 음란물, 동성애, 나체남녀의 엄지손가락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고급 디자이너 브랜드의 전면에 섹스 어필의 이미지를 내세우는 것은 이 시기에 매우 예외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캘빈 클라인의 광고는 그에게 성 도착이나 마케팅 천재에 대한 이중적인 평가를 주었다. 1974년 첫 이혼 후 스튜디오 54와 같은 뉴욕 독신주의의 쾌락주의적 밤 문화에 빠져든 캘빈 클라인의 생활 방식은 그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전통적인 상류층의 좋은 맛을 따르기를 원했던 랄프 로렌과 달리 캘빈 클라인은 도덕과 관습에서 벗어나는 것을 즐겼고, 때로는 이것이 그의 제국에 위협이 되기도 했다. 1999년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한 캘빈클라인어린이 속옷 광고는 대중의 항의로 하루도 안 돼 철거됐다. 그러나 캘빈 클라인의 마케팅 전략은 베네톤, 개스, 톰 포드의 구찌 광고로 이어졌고, 결국 그는 오래된 마케팅 천재로 인정받게 되었다.

캘빈클라인 언더웨어는 광고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젠틀한 이미지를 표현하고 속옷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꾼 것으로 유명하다. 1982년 올림픽 장대높이뛰기 선수 톰 하이노스를 모델로 한 사진작가 브루스 웨버가 촬영한 캘빈클라인 속옷 광고는 남성의 몸과 성을 표현하는 규범에 도전해 새로운 남성 이미지의 상승을 예고했다. 타임 스퀘어에 설치된 거대한 옥외 광고판은 그리스의 산토리니 섬의 하얀 건물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그리스 신화 속 영웅을 닮은 근육질의 구리빛 몸매를 드러낸 남성 모델을 선보였다. 모델은 허리춤에 칼빈 클라인의 로고가 드러나는 타이트한 화이트 브리프만 입고 있었다. 이 광고는 남성의 몸을 강한 몸으로 재현해 온 기존의 형태와 달리 남성을 에로틱하게 성적 대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논란을 일으켰고, 남성 동성애자들에게 어필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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